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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IMJMWDP 컴필앨범 작업기 (송캠프 pt. 2) [단독공개] (ENG SUB)
언제까지나 자기만의 방에서 끙끙댈 수는 없다.
by 김동현
모두가 블랙넛을 보며 답답해한다. 왜 저렇게 랩을 잘하는데도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비트도 잘 찍으면서 왜 본인이 쓸 생각을 안 할까? 정규앨범 없이 싱글 및 피처링으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행보를 만인은 불편해한다.
대중들은 결과물을 본다. 열광하거나 힐난한다. 그러나 창작을 하진 않는다. 실제로 창작할 필요가 없기에 그들은 무적이 된다. 그들은 평범과 무난을 무기로 링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틀린 말은 하지 않는다. 합당과 적합, 타당과 당위는 언제나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그들의 동반자다. 그래서 창작자와 대중은 서로 만나지도 못할뿐더러, 우연히 만남이 성사돼도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다. 링 위에 서 있는 건 창작자이며, 대중도 소비자로 남기 위해선 링 위에 올라서지 않겠다는 세상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한편으로 대중들도 조급하다. 그들 또한 쏟아지는 작업물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표류자일 뿐이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게 없기에 뭔가를 봐야 하는 숙명을 지닌다. 그래서 타인의 작업물에 자신의 결핍을 투영하고 투사하며 결국 완연히 전이돼 버린다.
그렇다고 링 위에 올라선 창작자가 더 우월하지도 않다. 원치 않더라도 그들은 언젠가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작업물’을 갖고서 말이다. 자신이 한평생 시간을 들인 세계서 몰입하지 못한 예술가는 슬프다. 대중들이 원하는 바를 스스로 도출하지 못하듯, 창작자는 자신의 특질과 기질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문제는 자신의 정수를 찾아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덤덤하게 풀어내는 문장과는 달리 사실 이는 꽤 잔인한 문제다. 골문을 지키는 숙명을 지닌 골키퍼의 이상이 몸소 상대 골문에 골을 터트리는 것이라면. 이 이야기의 엔딩은 이상과 현실의 철저한 별리이다. 더욱이나 이 문제는 병원에 가서 증상을 말하고 약을 처방받아 해결되는 세상의 사례와는 궤가 다르다. 높고 낮음의 층위 문제가 아니다. x축과 y축이 한없이 변화하며, 정답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정확히는 정답이 없는 게 아니라, 개인마다 다르게 도출된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의 행보를 공식화하고 이론화하려는 세상과 자본의 기조와는 철저히 반대된다. 바로 여기서 모순과 역설이 발생한다. 그러니 기분 좋게 답지를 뜯어와서 펼쳐본다 한들, 그게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는 좌절만 남는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에서 유일하게 빠져나오지 못한 엘피스를 보듯이.
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모두가 붓다가 될 수 있을지언정, 길은 겹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정도(正道)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보라. 당신의 답을 찾으라.



